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참으로 보고 있기 힘든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은 마츠코라는 여자의 평생을 조망하는 이야기인데 그 팔자가 참으로 기구합니다.
한참 영화를 보고 있으면 평범한 여자에게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불행이 우연히도 연쇄적으로 닥쳐오는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면 ‘악녀라면 모를까, 왜 이렇게 착한 여자가 두 시간 내내 고통 받는 영화를 만들었을까?’
라는 근본적, 권선징악적 의문이 생기죠.
이 영화는 몹시 꼬여있습니다.
혐오스런 마츠코 라는 제목부터 모순입니다. 더없이 선하고 아름다운 마츠코에게선 혐오스러운 면은 좀처럼 찾기 힘들죠.
내내 비통한 상황만 늘어놓는 주제에 영상은 코미디 영화같이 시종일관 유쾌하고 발랄하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이 영화의 제목부터 연출까지, 이토록 꼬아 감춰놓은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그 진의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앞서 얘기한 대로 마츠코는 굉장히 선량한 여인입니다.
그런데 그녀의 인생을 관조하다 보하면 그녀가 굉장히 일관된 모습으로 인생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일관성이란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남의 기대에 맞춰 살아가기’.
그리고 이 일관성이 그녀의 인생에 가져온 우연한 불행들은 어찌할 수 없는 필연이 돼 그녀의 인생을 덮치고 말죠.
다시 말하지만 영화는 좋은 여자 마츠코가 억울하게 죽은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바는 ‘주관 없이 착한 사람이 얼마나 비참한 꼴을 맞이하는지’ 가 아닐까요.
그러나 불행을 가져온 원인이 마츠코가 내향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착각하면 안됩니다.
주관 없음, 낮은 자존감 등은 으레 내향적인 사람과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영화를 대충 보면 관객은 마츠코의 불행을 내향성이나 소극적인 모습이 그녀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어놨다고 생각해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낮은 자존감의 근본적 원인은 매사 적극적이며, 사랑스럽고, 희망을 믿는,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에 더 뿌리 깊게 박혀 있습니다.
이러한 주제의식을 드러내기 위함은 마츠코가 관객에게조차 좋은 사람이어야만 했던 이유가 아닐까요.
영화는 30년에 가까운 세월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동안 마츠코는 착하고 똑똑한 딸, 모범적인 교사, 윤락가의 여인, 교도소의 죄수, 자신을 파괴하는 뚱보 여인까지 변화무쌍하게 변모합니다.
마츠코에게는 누가 생각해도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할 만한 시기가 수차례 찾아옵니다.
그러나 모든 고비에도 마츠코는 꿋꿋하게 일어납니다.
그 동력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동력이 마츠코를 폐인으로 만듭니다.
마츠코의 인생은 사랑을 기대하고 배신당하는 과정의 연속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며 착하고 똑똑한 딸이 되려 했다가,
성인이 되어서도 제자를 감싸주려다 누명을 쓰고 교사직을 잃습니다.
잔인하고 폭력적인 기둥서방을 죽여 옥살이를 하고, 야쿠자에게 버림받은 후 결국 폐인 되고 맙니다.
극중 누구도 마츠코가 준 사랑에 보답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걸 잃은 마츠코는 습한 골방에서 추한 몰골로 되뇌이죠.
“이제 아무도 믿지 않아. 이제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 이제 아무도 내 인생에 들어오게 하지 않아.”
그러나 이 말조차 거짓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누구에게라도 좋으니 사랑받고 싶고, 모든 걸 바치고 싶다는 절규에 가깝게 들리니까요.
그 추한 몰골조차, 마츠코 스스로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을 자신이 없으니 일부러 누구라도 사랑할 수 없는 모습을 택한 것이었던 것이 아닐까요.
마츠코의 입에서 나왔어야 했던 말은 “더는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아”가 아니라 “이제는 ‘나를’ 사랑할 거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은 너무도 흔하지만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마츠코도 그랬습니다. 자신의 욕망은 평생 들여다보지 않고 남의 기대에만 맞춰 살았죠.
교사, 매춘부, 미용사라는 세 가지 직업을 가졌고 모두에서 두각을 드러냈으나 그건 결코 본인이 그 일을 좋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직업이 요구하는 역할을 충족하는 데 보람을 느꼈을 뿐.
남자에게도 마찬가지. 집에서는 참한 딸, 야쿠자에게는 요부, 이발사에게는 단아한 여성으로 변했지만,
이것은 그녀가 ‘사랑받는 마츠코’가 될거라고 착각했던 자신의 행동이 사실은 ‘남자들의 이상형’을 추구하는 것에 불과하였습니다.
이 영화가 단지 ‘여자’ 마츠코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흔히 이 영화를 얘기할 때 많은 사람이 마츠코가 '여자'라는 사실에만 주목하고는 비련의 여인인 마츠코를 동정하고, 그녀를 버린 남자들을 혐오합니다.
하지만 마츠코의 행동들로 대변되는 것은, 여자이기 이전에 이전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본연의 외로움입니다.
이를 간파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혹은 ‘저런 남자 만나지 말아야지’같은 투박한 감상밖에 남지 않습니다.
당신이 남자든 여자든 인간이라면 모두 똑같습니다.
부모도, 친구도, 연인도, 어느 누구도 당신을 구원할 수 없어요.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주체적 선택과 주관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사 적극적이며, 사랑스럽고, 희망을 믿는 자신을 건설하는 것 외에도
소극적이며, 못나고, 태만한 나를 타인 앞에 떳떳하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내 모습마저 사랑해주지 않을 거라면 내게서 관심 끄라 외치고는 태연하게 홀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법’이야말로 우리에게 지극히 절실한 멜로가 아닐까요.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영화 추천 :: LIKE CRAZY(스포주의) (0) | 2023.07.05 |
---|